인간은 어떤 사건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반응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의 기본전제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현실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사건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주관적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개인의 해석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는 법입니다. 직장상사에게 야단맞는 일은 누구에게나 불쾌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에 따라 불쾌한 정도의 차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하직원 A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남들로부터 내가 한 일에 대해 지적받는 건 끔찍한 일이야'라는 믿음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부하직원 B는 다소 낙천적인 성격으로 '누구나 실수는 있는 법이야. 내 일에 대해 지적받는다면 고치면 돼'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연 두 사람이 직장상사로부터 야단을 맞는다면 각각 어떤 반응을 할까요? 똑같은 강도의 비슷한 지적을 받는다면 말입니다.
인지행동치료에서 믿음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로 비유됩니다. 빨간색 렌즈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흰색 토끼는 빨간색 토끼로 보입니다. '남에게 지적받는 건 끔찍한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면 실제로도 끔찍한 감정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사건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세상을 살다보면, '저 사람은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뭐 저정도 가지고 벌써 포기한다는 소리를 할까?'와 같은 상황이 자주 벌어집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주관적인 현실세계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인지행동치료의 목표는 내담자의 입장에서 내담자의 눈을 통해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핵심믿음을 파악하고 좀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핵심믿음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취약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발표나 시험과 같이 남들 앞에서 평가받는 상황에 취약한 사람이 있고, 말다툼과 같이 경쟁구도에 취약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거절당하는 상황에 취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마다 취약한 상황이 다른데 개인이 어떤 상황에서 취약해지는지 알게 되면 그 사람의 핵심믿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핵심믿음을 이해하고 나면 그 사람이 취약한 상황에서 보이는 감정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를 왜곡된 신념을 반박해서 수정하는 치료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받고 수용되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자신의 믿음을 절대 수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3자 입장에서 왜곡된 믿음이라고 보여지는 생각도 내담자 본인 입장에서는 왜곡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믿음은 비현실적이라거나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담자 스스로 과학자의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믿음을 검토해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인지행동치료자의 올바른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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